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귀스트 콩트 (문단 편집) == 여담 == * 사회물리학이 사회학이 된 데에는 콩트의 작은 공명심이 영향을 주었다. 콩트가 벨기에의 사회통계학자 아돌프 께틀레(Adolphe Quetelet)가 사회물리학이라는 용어를 도용하고 있다고 생각한 끝에, 자신만의 용어를 만들기 위해 새롭게 조형한 용어가 바로 사회학이다. 오늘날에 와서 사회물리학이라는 단어가 물리학 기반의 사회 연구자들에 의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을 보면 콩트가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고 해야할까. * 콩트는 친구나 동료 연구자가 얼마 없었는데, 이는 그의 학문적 발전에 한계가 되었다. 다른 분과 학문의 전문가들은 자신의 학술체계에 자신들의 분야를 모두 포섭하려는 콩트의 시도를 경멸했다고. 물론 친구가 없는 게 이런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인간성에 큰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례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대표적인 일로는, 자신을 1년동안 무상으로 후원해 주던 [[존 스튜어트 밀]]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후원을 중단하자 그 동안 받은 후원은 아랑곳않고 밀을 비난하고 모욕하며 후원을 재개하라는 편지를 보낸 사건을 들 수 있다. 그 때 밀은 자신의 다른 친구들에게 콩트의 후원을 이어줄 것을 부탁하고 다니고 있었다. * 학생 시절엔 요즘 식으로 따지면 [[운동권]]이었다. 정확히는 완고한 공화파. 젊었을 적 활동의 영향인지 그는 평생 '질서'와 '진보' 두 축을 하나의 체계 안에 통합시키고자 시도했다. 역시나 싸움닭 기질이 있었는데, 아무리 상황이 열악해도 자신의 적들과 싸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 인류교라는 [[종교]]를 창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마흔 일곱 살 되던 해에 클로틸드라는 서른 살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하필 플라토닉 러브가 지속된 지 1년만에 클로틸드가 폐결핵으로 사망. 너무 큰 드라마를 찍어서 성격이 바뀐 건지, 남은 평생을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보편적 사랑의 힘을 전파하는 대사제]](...)가 되기로 했다. [[차도남| 차가운 도시의 실증주의자]] 콩트의 이런 급격한 변화에 그를 지지하던 지적 동료들도 떠나가버렸지만, 새롭게 생긴 제자들에 콩트는 만족했다고 한다. * 1835년에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밝혀진 모든 것을 가지고 풀려고 해도 절대 해명할 수 없는 수수께끼가 있다. 그것은 별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문제다." 라는 말을 남겼는데 그가 죽고 2년만에 분광기를 이용한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별의 구성성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분젠과 키르히호프가 태양광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태양에도 지구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펑범한 원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다만 수소가 주된 구성성분임을 알아낸 것은 좀 더 훗날의 일이다. 천문학에서 분광 관측의 중요성을 언급할 때 종종 거론되는 일화 중 하나이다. * [[브라질]]의 국호 '질서와 진보(Ordem e Progresso)'는 콩트가 만든 격언을 가져다 쓴 것이다. [[브라질 제국]]을 전복시킨 군부와 사회 전반에 실증주의 추종자들이 많아 국기에 그의 격언이 삽입되었다. 실증주의는 브라질 외에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도 인기가 많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